Citizen cb3010-57e를 사다

뜬금없이 시계를 샀습니다. 신경쓰지 않아도 항상 정확한 시간을 보여주고, 너무 조심하지 않아도 스크래치가 잘 나지 않는 시계를 갖고 싶었습니다. 기계식 시계는 당연히 제외하고, 충전이 필요한 스마트워치도 제외하면 전자식 쿼츠 밖에 남지 않더라구요.

쿼츠 시계는 오차를 보정할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전파를 받아서 시간을 보정하는 시계까지는 예전에도 봤었는데, 요즘은 스마트워치가 아니라 일반 시계에도 블루투스와 GPS가 들어갑니다. 아직 모듈의 크기가 커서 그런지 이런 시계들은 약간 크긴 큽니다. 보통 전파시계의 지름이 38~40mm정도 하는반면 GPS 시계들은 42~44mm의 지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목이 얇은 사람들은 GPS 시계로 캡틴아메리카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매력 중 하나는 배터리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쿼츠는 시계가 가지 않으면 배터리를 교체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젠 태양빛으로 배터리를 충전합니다. 여러 브랜드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지만 대체로 기능과 성능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책상 구석에 쳐박아두지 않는다면 시계를 차고 다니면서 충전되기 때문에 마르지 않는 구동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크래치가 잘 나지 않으려면 경도가 강해야합니다. 시계의 케이스로 스테인리스 스틸과 티타늄을 많이 씁니다. 둘의 무게는 차이가 크지만, 경도는 사실 비슷합니다. 그래서 많은 시계 회사들이 이 재료들의 경도를 높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테인리스는 여전히 무겁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줄 시계를 찬다면 손목에 스마트폰 하나를 올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원하는 조건을 가진 모델이 몇 가지 있습니다. 가볍지만 단단하고, 너무 크지 않고도 오차를 자동으로 보정해주는 태양광 충전 시계. G-SHOCK의 최상위 라인을 제외하면 가격도 비교적 합리적인 편입니다. (여전히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지만 디자인이 깔끔한 시티즌의 cb3010-57e를 구매했습니다.

스펙을 나열하자면…

  • 시계 전체 무게가 87g로 가볍습니다. 티타늄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했다면 140g쯤 되었을 것 같습니다.
  • 케이스 크기는 40mm로 둘레 16cm인 제 손목에 딱 적당합니다.
  • 비싼 시계에만 쓰인다는 자라츠 연마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이게 뭔가 찾아보니까 거울처럼 매끈하게 표면을 갈았다는 얘깁니다. 손목에 차보면 피부 주름까지 반사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 듀라텍트라는 경도 강화 기술을 적용해서 일반 티타늄 혹은 스테인리스스틸보다 약 6배 스크래치에 더 강합니다.
  • 매일 라디오 전파를 수신해 오차를 보정합니다. 그냥 두면 자동으로 수신을 시도하고, 수동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영국, 독일, 중국, 일본, 미국의 수신국으로부터 전파를 받습니다. 높은 곳에서 남쪽을 바라보게 두면 수신률이 높아진다는데…
  • 태양광으로 충전합니다. 완충시 추가 충전없이 방전까지 2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배터리 잔량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충전 경고 기능과 과충전 방지 기능도 있습니다.
  • 절전기능. 빛이 없는데 움직임도 없으면 시계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절전모드가 해제되면 다시 정확한 시간으로 알아서 맞춰집니다. 처음에 배송받고 상자를 딱 열면 바로 이 기능을 볼 수 있습니다.
  • 퍼페추얼 캘린더. 다음달로 넘어갈때 날짜를 자동으로 조정합니다. 윤달까지 알아서 계산합니다.
  • 24개 도시의 세계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서머타임도 적용합니다.
  • 충격 감지 기능. 이 때 삐뚤어진 바늘을 자동으로 보정합니다.
  • 항자성 기능. 직류자계 4,800A/m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 사파이어 크리스탈에 무반사 코팅을 적용했다는데 잘만 반사합니다.
  • 야광 있구요.
  • 100m 방수됩니다.

이런 저런 기능이 있으면 시계 앞에 자랑할만도 한데, 앞은 깔끔합니다. 기능 자랑은 시계 뒷면에 해놨습니다. 좌측에는 용두와 버튼 2개가 있습니다. 버튼은 숨어있어서 앞에서 보면 보이지 않습니다. 버튼을 누르려면 뾰족한 게 필요합니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배송이 딱 2월 28일에 와서 날짜가 넘어가는걸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열 두시 땡 하면 날짜가 넘어갑니다.

사진으로는 실물의 느낌을 담을 수가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정말 작고 단단해보입니다.